안녕하세요 제목 어그로 죄송해요
남편이 저한테 한 말 그대로 써 봤어요
댓글 남편이랑 같이 볼 거예요
본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시조카보다 친정 조카가 예쁩니다
외모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이요
근데 솔직히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 거지 남편 가족을 사랑해서 결혼하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시집 식구도 가족이 되는 거지
시집 식구가 가족이라서 남편이 된 것도 아니고요
솔직히 친남매라면 평생을 같이 살다가 결혼하거나 독립하면서 떨어지는 건데
당연히 친남매의 친정 조카가 예쁘지 않나요?

저는 3남매중 첫째고 딸이에요
둘째 여동생 막내는 남동생인데
특히 제가 여동생이랑 진짜 진짜 친해요
2년 터울이 있는데 둘이서 매번 쌍둥이었다면 학교도 같이 다녔을 텐데 그러면서 아쉬워했고
결국 성인 돼서도 같은 대학 입학해서 같이 자취하다가 차례대로 졸업하고
결혼하고서도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중이에요
아무튼 서로 어릴 때부터 오만가지 이상한 약속도 하고 정말 애틋하게 지냈었어요
친정이 지방이구 막내는 다른 지역 부모님은 지방에 계셔서 이 지역에 인연이라곤 둘밖에 없으니 특히 더 자주 만나요

남편은 연애 때부터 농담조로
처제한테 하는 것처럼 아가씨랑도 잘 지내 보라는 둥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에요
너네 집은 좀 유난이라며 개소리를 하기도 했고요
꼬우면 지 동생 지가 잘 챙기지

아무튼 본격적인 충돌은 둘째 첫 출산부터 시작돼요
저랑 둘째가 딱 일 년 터울로 임출을 같이 했어요
저 애기 낳을 때 쯤 둘째가 조카를 임신했거든요
근데 동생이 진짜 아직도 너무 고맙고 예쁜게
저 애기 낳고서 산후조리하라고 300만원을 줬어요
지 모아뒀던 돈에서 준 거라구
시댁에선 시아버님이 시어머니 몰래 따로 50만원 주셨어요
그것 말곤 받은 게 없구요
근데 세상이 미친남편놈이 그 삼백만 원 아가씨 결혼하는데 축의 겸 혼수 웅앵 하길래 거하게 한판하고
이혼하네 마네 했다가 싹싹 빌길래 그 돈 모아두고 남편 용돈 카드로 산후조리 결제하고 넘어갔어요
딱 열 달 후에 둘째가 조카 낳고서 100더 얹어 400만원 조리하라고 돌려줬어요
남편 돈 아니고 제 돈으로요
저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부업처럼 이것저것 만들어서 팔았구요
가끔 외주도 받아서 고정 수입처럼 버는 돈이 꽤 있었기 때문에
본가에 살면서는 그 돈을 모두 모아왔거든요
온전히 제가 번 돈으로 동생 용돈을 준 거나 다름 없는 셈이에요
물론 지금도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하고 있고 생활비 외 제가 옷 사고 쓰는 거 종종 애기들 비싼 코트 같은 거 남편 선물은 제가 번 돈으로 쓰고 있습니다
잠깐만에 댓글로 전업이 남편 돈 웅웅앵 하시는 분 계셔서 추가합니다 ^^ 저도 돈 벌어요~
근데 그걸 가지고 진짜 지랄을 해서 그때도 정말 정 털렸는데
또 딸한테는 세상 끔찍한 아빠라
딸 보면서 참자 했어요
그 외엔 딱히 멍청한 짓도 안 했고요

참고로 올해 딸 7살 친조카 6살 시조카 4살이에요
저는 옷 맞춰 입히는 걸 좋아해요
저 어릴 때도 동생이랑 커플룩처럼 많이 맞춰입고 그랬어요
셋 다 딸이라 우리 딸 거 사면서 조카 거 하나
그래도 같이 딸 키우는 입장이라 셋이 나이 터울도 많이 안 나는데 생각이 나서 시조카 것도 하나
알아서 챙길만큼은 챙긴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게 챙겨 왔는데
남편놈 눈엔 친정조카 입에 들어가는 것만 보이나 봐요
지 동생 딸은 안 챙긴다고 니 조카만 조카냐고
(실제로 니 조카라고 함)
지랄지랄
진짜 욕 나와서 저도
니 조카가 입고다니는 원피스 누가 사 줬는지 생각해 봐라
지난번에 시집에서 니 조카가 거실까지 신고 들어와서 춤췄던 그 구두 누가 사 줬는지 생각해 봐라
냅다 소리지르면 지 불리하니 입 꾹 닫고

또 한 번은 딸이 발레 다니고 싶다고
&&이랑 같이 다니면 안 되냐고
그래서 제가 동생한테 &&이도 같이 보내자 그랬더니
같이 보낸대서
동생은 일을 하니까 제가 발레 학원까지 픽업하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또 남편이 시조카도 데리고 다니래요
4살이 발레가 가능한지도 의문인데
거리도 편도 30분이 넘습니다
제가 운전기사도 아니고 왕복 한 시간 거리를 4살 시조카 발레 시키려고 다녀야 하나요?

이번엔 또 아가씨가 이혼을 하네마네
하다가 부부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시조카를 저한테 맡기겠대요
한두달 정도요
얼탱없어서 진짜
그래서 싫댔더니
동생 수술 때문에 친정조카 이삼 주 제가 맡았던 일 들먹이면서 차별이래요
내새끼 귀한 내동생 아파서 반쪽된 상태로 수술실 들여보내는 것도 맘이 찢어지는데
그런 상황을 들먹이며 차별이라고 하는 그 멍청한 발상 자체가 이해가 안 돼요
심지어 시누 편도 수술한대서 제가 일주일 시조카 맡아서 봤던 적도 있어요
그렇게 따지면 차별도 아니지 않나요?
이번엔 상황이 다른 건데
어른 지들 편하자고 애를 물건도 아니고 맡긴다는 게
꼬우면 니가 휴직하고 들어앉아 조카 보랬어요

아침에 밥 차려줬는데 안 처먹고 씩씩거리면서 나가더니
오늘 늦을 거래요 ㅋ
링크 보내 주려고요

남편놈아
차별은 네 마음 속에서 시작됐다
나는 늘 예@ 거 살 때 아@이 것도 샀다
셋이 같은 옷 입은 거 니 입으로 말한 것만 몇 번이니
나는 천성이 아가들을 좋아해서
키즈카페고 워터파크고 갈 때마다
꼬박꼬박 아@이도 챙겼다
아가씨 나처럼 전업하면서 저 피곤하다고 나한테 아@ 맡기면
나 혼자 애기 셋 케어한다고 진 빠지는 동안
너는 예@ 입에 뭐 하나 더 들어가나 그것만 보였니
꼬박꼬박 언니 고맙다고 옷 사고 화장품 사 주는
귀하고 예쁜 내 동생 행동은 안 보이더니
이거 읽고 반성문 써서 보내라 남매 쌍으로 이혼하기 싫으면
댓글에 내 욕 있으면 나도 그거 보고 반성 좀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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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탈 죄송합니다.

며칠 고민끝에 글 올려봐요.


저는 평범한 30대초반 여자입니다. 기혼이나 아이는 아직 없어요.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네살 아들 하나 있고요.

저희는 같은 동네에 살고있고 길만 건너면 친구네 아파트입니다.
한마디로 엄청 가까워요.

저는 사정상 일을 쉬고있어 종종 놀러가구요.
그리고 저번주 금요일...그날도 친구네 집에 놀러갔죠.

아이는 어린이집에 안다녀서 집에 있었고
한참 얘기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친구에게 킨×조이를 까달라고 하더니 거실에서 킨×조이..를 먹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나도 그거 먹어봤는데 초콜릿 진짜 맛있더라
근데 좀 비싸던데 ~ ㅇㅇ이는 좋겠네!"
라고 말해줬더니...친구 하는 말이,,

"아 저거 마트에서 계산하는데 쟤가 몰래 가져온거야~~ 종종 집어오더라구. "
......순간 귀를 의심했어요

그래서 제가 재차
"돈 내고?"
라고 되물었더니

"돈을 왜내ㅋㅋㅋ아무도 몰라ㅋㅋ"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말했죠.
그건 도둑질인데 보고만 있다고??????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네요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너는 아직 애 안키워봐서 모른다고...
하는데.....

전 이해가 안되거든요??
저도 조카랑 둘이서 편의점 가봤고....애가 계산대 밑 가판대에서 주운건 계산했고요..
다른 엄마도 다 그런다는데 정말인가요?

대놓고 싸운건 아니지만 은근 싸우고 왔어요..
신랑한테 얘기했더니 신랑도 그건 도둑질이지
말하네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너무 당당해서 제 생각이 틀린건가 생각도 들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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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30대 맞벌이 부부로 평범히 살아온 초3딸과 초1 아들을 둔 엄마였습니다.ㅜㅜ..

1월 14일 아마도 방송에서 뉴스들 많이 보셨을텐데...

제 여리디 여린 초3 딸이 집앞 3분 인도에서 무참하게 포크레인 밑에서 처절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주유소 진입로가 있는 인도였는데 한번 멈추고 들어와야하는 진입로에서 곧바로

포크레인이 4차선 도로에서 3차로에서 기름 넣을생각에  바로 인도로 멈추지않고

4차로 차와의 충돌만을 피한채 급히 서둘러 진입로에서 멈춤없이 그 무시무시한 포크레인으로

덮쳐버린겁니다..

 

대한민국 대낮  ... 그것도 사람이 다니는 인도 사건시간 2시 30분

급히 경찰전활 받고 달려갔을때

응급실에서 제딸은 이미 처참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고

시체검안서의 사인은 다발성장기손상....

 

여린 11살 딸...

아직 4학년이 되지못한 딸....

이런 지나가다 왠 날벼락이랍니까...

 

2020년 1월 1일 저는 제 딸과 정동진에 일출을 보며...

2020년 한해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습니다.

춥고 졸립고 ...힘든시간을 기다리고 새해의 일출을 함께보며 소망했던....

내 딸...다신 볼수 없습니다.

평생을 마음한구석에 묻고 살아가야 한다는게 ..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아이가 뛴것도 아니구요.

이어폰을 낀것도 아니구요.

그저 앞을 걷고 있었구요..

뒤에 눈이 없는 우리아이... 뒤에서 집어삼킨 영상을 ...

저는 차마 볼수없어 보지 못했습니다..

 

상상만으로 너무 참혹합니다..

저와...남편...

그리고 누나가 엄마보다 좋았던..우리아들...

 

하루아침에 이 세상 가장 소중한것을 잃은 우리 가족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나요..

 

그 대낮에 우리 딸이 아닌 누구도 생길수 있는 일이였습니다..

그렇게 운전하면 사고난다는것은 포크레인 기사도 알수 밖에 없는게

4차로에서 차가 와서 자기만 박지 않으면 된다는 맘으로 돌진 한거 아닙니까?

그 길을 대낮에 걷고 있던 사람은요?

 

이게 실수입니까?

정말 이런 대한민국에서 누가 생명을 존중받고

안전을 담보 받고 살수 있단 말입니까...

 

다신 저처럼 ....

비극을 또 누군가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세요!!

국민청원...사고를 예상한 살인운전은 반드시 엄벌 받아야합니다!

모두 바쁘시더라도..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마시고 ..한분한분의 정성을

모와주십시요..

 

주변분들에게 널리널리 알려져서 더이상 저같은 아픔은 누구도 겪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한달동안 많은 공유와 청원 부탁드립니다...

 

세상 모든것을 주어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여러분의 가족을 위해...

꼭 ...제발 ...부탁드립니다..

(국민청원)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497

 

(관련기사)

http://www.mbn.co.kr/vod/programView/1233091

http://news.jtbc.joins.com/html/090/NB11930090.html?log=jtbc|news|index_main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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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처음 글 올려보는데 이 곳이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도 많은 것 같아 조언 얻으려 글 올립니다.

모바일로 작성하느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실수 양해 부탁드려요.

저는 20살차이나는 조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니 키웠었습니다.
근데 다시 데려오고 싶습니다.

입양까진 아니고 같이 살기만 원해요.
댓글보니 입양하지말라고 그얘기가
많이 쓰여있어서 살짝 추가합니다!!!


정확히 친 오빠의 딸이고 지금 그 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읽기 편하게 쓸 테니 양해 부탁드려요.

긴 얘기가 될 것 같으니 긴 글이 싫으신 분은 패스해주세요.


본인은 84년생 여자임.

친 오빠가 75년생으로 9살차이이고
유일한 형제임.

조카는 04년생 여자아이가 현재 17살임.

오빠가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았고 아이가 24개월쯤 됐을 때 이혼함.

이혼사유는 여자가 바람났음.
아이 돌 지나기 전부터 첫사랑이라는 남자를 몰래 만나다가 아이때문에라도 가정에 돌아와 달라는 오빠 말에 잠시 돌아왔으나 다시 나갔음.

여자가 갑자기 이혼해달라고 해서 오빠가 빌다시피 데려왔지만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이혼만 해달라는 여자, 우리 부모님이
마음 떠난 여자인데 잡지 말라고 해서
이혼하기로 했음.

오빠가 위자료로 오 천만원 달라고 했는데 순순히 들어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혼 당시에 여자가 상간남 아이를 임신 중이였다고 해서 위자료도 순순히 준거였음.

결혼할 때 오빠가 집했고 여자 혼수도
오빠가 모은 돈으로 했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우리 부모님도
그냥 잘 넘겼음. 아는척했다가 며느리만
민망할까 싶어서..

이혼하면서 당연히(?) 아이는 여자가
안 데리고 갔음.
그나마 양육권 소송하면 어떻게 될까 싶어
걱정했었는데 천만 다행인......

이혼판결문에 이혼 파탄의 이유를 가진
유책배우자가 누구인지 써있고
위자료 지급 내역이 적혀 있으므로 뭐 양쪽 얘기를 들어 봐야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실 까봐 미리 적어 놓음.
이혼은 오빠 잘못이 아니였음.

그 년놈들은 서울이 아닌 타지역에서
딸 낳고 잘산다고 함.

나는 그때 대학생이었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라 어렵기만 했는데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했음.

20대초반의 나는 술 마시고 노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조카를 봐주기 시작함.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조카를 데리고 같이 만나기도 했음. (몇년사귀다 헤어지긴 했지만 좋은 사람이였음.)

오빠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정리하고 1년쯤 쉬다가 창업을 했고 대박남. 신문에도 날정도로 크게 성공함.

나는 대학졸업 후 유학 가고 싶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2년정도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쉼.
그러다 기간제교사를 2년쯤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고 국내 대학원 다니다가 지금 하는 일을 하게됨.
(하는 일을 자세히 적으면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 직업은 적지 않겠습니다.)

아이는 거의 나와 우리 부모님이 키웠음.

오빠는 바빠지기 시작했고 일주일에 하루이틀 정도만 잠깐 들려 아이 얼굴만 보다가 나갔음.

그 당시 엄마도 심리적으로 많이 지치셨을 때라 거의 내가 아이를 돌보았음.


아이 어린이집 등원도 내가 시키고,
식판도 내가 늘 닦아서 소독해서 보내주고
어린이집 행사있을 때 참석하고 아이 생일 때는 기 세워준다고 사탕이나 작은 선물같은 거 반애들한테 돌리기도 했음.
그외 입학식 졸업식 다 내가 다녔고
초등학교때까진 상담도 내가 갔음.

대신 돈 걱정은 없이 지냈음.
내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는 오빠에게 용돈도 자주 받았었고 양육비? 육아비로는 돈 걱정없이 아이를 최고로 키웠음.

먹는 것도 최고급이고 책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전집도 계속 들였고, 유치원도 들어가기 어려운 영어유치원도 보냄.


나는 초반에 집에서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다가 부모님 패턴과 맞지 않아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오피스텔을 얻어서 일을 했음.
아이 등원 시키고 하원은 우리 아버지가 해주시면 내가 6시나 7시쯤 집에 가서
아이 씻기고 밥먹이고 책 읽어주고 같이 자는 패턴을 쭉 초등학교때까지 했음.

아이는 순하고 말이 없는 편이긴 하지만 나와 있을 때는 수다스러움.

중간에 오빠가 재혼하겠다고 해서 7살에
아이를 데려간 적이 있었음.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이한테 가정을
만들어줘야겠다던 오빠..

서운했지만 아빠랑 사는게 맞다고 생각해서 보냈고 나는 그때 만나던 남자가 있었기 때문에 결혼도 해야하고 조카에게 묶여있는 모습이 싫다던 나의 아버지는 손녀보다 내 딸이 우선이라 하시며 네 인생 살으라고 아이를 오빠에게 보내셨음.
나는 그때 잠실에 살았는데 오빠는 수원에서 살게됐음.

재혼한 여자는 이혼경력이 있지만 아이는 없는 여자였음.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수원에 일때문에 갈 일이 생겼는데 만날 사람이 본인 집 근처에서 보자고 해서 가보니 오빠가 새로 이사간 아파트 단지였음.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인터뷰간거라 그 분 집 근처 카페에서 1시간정도 얘기 나누고 나오는 길에 조카랑 새로운 새언니가 지나가는 걸 보았음. 근데 갑자기 그날 만나서 인터뷰했던 내 손님이 하는 얘기가, "어머 저 여자 또 휘황찬란하네." 이러더라..

그래서 왜요? 아시는 분이세요? 했더니
저 아이가 (제 조카) 자기 아이랑 같은 반인데 옷도 매일 같은거 입고 오고 안 씻어서 냄새 나는지 아이들이 싫어한다고.
지금 애 옷 입은거 보이냐며
지금 12월달말인데 애기 청자켓 입었잖아요.... 근데 엄마는 완전 휘황찬란하게 하고 다니네...


나는 막 눈물이 날것 같은데 꾹 참고 그 분하고는 어떤 표정으로 인사를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대충 인사를 하고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동 호수를 물어 그 집에 찾아감.

집에 가서는 새로운새언니에게 내일 주말이니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겠다는 말을 화를 억누르며 대충하고는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갔음.
그 앞에서 지랄하기엔 아이도 있었고 사실확인도 필요하니까.

아이를 데리고 차에 앉힌 뒤 찬찬히 살펴보았더니 꼬질꼬질한 것도 말할 것도 없고
그 깔끔하던 아이가 손톱도 길고
옷 소매 쪽은 새까맣더라..

그래, 아이를 안 낳아보고 안 키워봤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때리지는 않지만 말 안 듣거나 잠 빨리 안 들으면 손자국이 날만큼 꼬집는다고 하더라..

내가 아이는 본가에서 키우고 오빠는 신혼처럼 둘이 살으라고 했으나 내가 애엄마도 아니고 무슨자격이 있겠음..

그놈에 초등학교 입학이 뭔지 온전한 가정이 뭔지 기어이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결국은 그 여자가 외로워서 못산다는 핑계?로 얼마 안있다가 헤어지게 되었고 조카는 다시 우리 집으로 왔다.

오빠는 아니라고 하지만 난 그 여자가
아이를 살뜰하게 잘 키웠을거라
생각하지 않으며 남에 새끼는 나도 못 키워. 나도 애 안 낳아봤는데 쉽지 않다고 처음부터 경솔한 결혼이었다고 욕함.

아, 아이가 그때 그 새엄마가 밥 빨리 안 먹으면 꼬집고 아빠가 없을 땐 말도 한마디 안 걸어줬다고 3,4학년때쯤 되서야 얘기함.

여자아이라 그런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니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되더라.
이때부터 나는 아이랑 여행도 많이 다니고
화장도 가르쳐주고 놀러다니고
베프가 되었음.
오빠는 우리가 붙어 지내는게 좋아 보이면서도 소외감 느낀다고는 했는데
워낙 바쁘셨 던지라 그런 감정은 잠깐 느꼈을 뿐 다시 일하느라 바쁘셨음.

그맘때부턴 해외출장도 한달에 두 세번씩 오고 가시느라 정신없었지..

나도 경제적으로 잘 풀리기 시작한때라
돈 걱정도 없었고 가끔은 얘가 그냥
내 딸이었으면 싶다고 생각했음.

근데 결혼은 하기 싫었음.

그런데 내가 일이 잘 풀리고 나니
내가 일하던 곳에서 시기하던 사람들이
내가 미혼모라는 소문을 냈음.

그럴 수도 있겠지..
내 SNS를 보면 거의 조카랑 둘이 놀러간
사진이 대부분이고
그땐 남자친구도 없었으며
해외로 일하러 갈 때도 가끔은 아이도
데리고 가고 했으니까.

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 얘기가 우리 부모님 귀에도 흘러 들어갔음.
(엄마친구딸이랑 나랑 같은 작업실을 씀.)

부모님도 많이 신경쓰셨고 나를 독립시키길 원하셨음.
그래야 남자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무엇보다 조카없이 네 인생 산다고.

조카가 중2때까지는 어느정도 버티고 있다가 오빠가 5~6살 딸 키우는 여자랑 재혼하겠다고 함.

어찌저찌하다가 아이는 아빠랑 살게 되었고 나도 그때 오빠랑 많이 싸웠을 때라 지치고 힘들어서 독립을 지방으로 했음.

아이랑 매일 카톡으로 안부 묻고 지냈는데 내가 1년사이에 일이 많아져서 예전처럼
자주는 못봤음.
아마 너도 어느정도 컸으니 이제 괜찮겠지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음.
(지금 생각하면 내가 나쁜년..)

그런데 몇달전쯤에 아이가 전화를 해서는 돈이 필요하다고 함.

옷도 사고 싶고 화장품도 사고 싶고 친구도 만나고 싶은데 돈이 없다고 하길래
내가 용돈도 줬고 고모가 너 세뱃돈 받은 돈이랑 등등 모은거 300정도 되는 통장 네가 관리하라고 줬는데 그 돈 다썼냐고 했더니 새엄마가 가져가셨다고 함.

용돈은 한달에 2만원주시고
할머니나 아빠가 가끔 용돈 주시거나 하면 그것도 뺏아간다고.

그리고 새엄마는 일이 바빠서 데려온 동생도 내 조카에게 돌보게 한다고함.

도우미 아줌마 계셨는데 조카가 그 집에
들어간 이후에는 출퇴근으로 바뀌었고
새엄마는 매장 일이 바빠서 늦게 오니까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조카가
거의 한다고 함.

어쩐지 저번에 봤을 때 성적이 떨어져서
내색은 안하고 그저 적응하느라 좀 힘든
가보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네..

생각이 많은 상태로 서울로 올라갔고
부모님께서 본가로 오빠네 부부를 호출함.

아이 아빠인 오빠한테 또 얘기했더니 화를 냄.

지난번처럼 아이가 어렸던 것도 아니고
지금 클 만큼 컸고 너도 애 일에 그만 신경 쓰라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부모님보다도
어려울 때가 많은 오빠라 싸워도
막 대들면서 싸운 적 한번도 없었음.

오빠, xx가 힘들 텐데 신경 좀 써줘.
뭐 이런 식으로 얘기하지 싸울 듯 대든 적 한번도 없었는데 처음으로 대들어 봄.

오빠 너 xx(조카)가 새언니가 데려온 애 밥 먹이고 씻기고 하는거 알아? 입주아줌마
출퇴근으로 바꾸고?
돈도 안주고 있던 돈도 다 뺏고 완전 날강도가 따로 없고 공짜로 사람 부려먹냐고
그럴거면 애한테 시급 쳐주고 니새끼 맡기라고 새언니앞에서 소리지름.

애 데려가려고 하는거 부모님이 두고
가라고 해서 오빠네부부만 돌아갔고
다음날 새언니가 전화해서는 아이가 너무 풍족하게만 자라서 돈 무서운거 모르는 것 같아 검소함을 가르치고 싶어서 그런거지 돈은 그대로 다 가지고 있다고 고모한테 돌려주겠다고 하길래 그럼 애 맡긴건 왜 그랬냐고 했더니 이제 자매인데 친해지라고 그런 거라고 함.

너 술쳐먹고 새벽에 온 날도 조카가 니새끼 재우고 시험공부 한거는 알고 있냐고 했더니 아무말 못함.

나중에 보니 통장에 돈은 그대로 있었음.

새언니가 없이살다 자수성가한 타입이라
조카가 풍족하게 사는 것에 대해 이해를 못했다고 함.(본인이 말함..)

나만해도 사시사철마다 옷 사입고 최고급 음식 먹으며 컸는데 조카는 나보다 더 부자인 아빠 만나서 그것도 못 누리냐고
한마디 했음.

아이는 지금 고등학교 입학 예정임.

나는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 결과 내가 조카를 데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함.
부모님은 반대 하시나 나는 결혼 예정도,
생각도 없으며 나만큼 아이랑 잘 지내는
사람은 이 집안에서 없다고 생각함.

오빠는 지금 새 가정에서 적응하는 과정이고 1년밖에 안됐는데 내가 끼어들면 안된다고 함.

새언니는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받은 게 많다고 생각함. 대화하는 중에 조카 데려가면 생활비 전처럼 못 드려요. 라고함.

금전적인거 필요 없어요. 나도 돈 잘벌어요라고 했더니 오빠가 사준 아파트는 뭐에요? 라고 하네ㅋㅋㅋ

몇년전에 아파트 하나 사둔 게 있는데 6억짜리사면서 1억이 부족해서 대출받으려고 했는데 오빠가 그냥 준 적이 있음.

갚을필요없다고 하면서 받았고
부모님도 그냥 받으라고 해서 받았음.

애를 키워서 그 자격으로 받았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빡침.

오빠가 사줬다고 했어요? 오빠는 나한테
1억 보태고 나머지는 다 내 돈이였는데?

그걸로 생색내려면 다시 돌려줄 테니까 애 키워준 값으로 그 돈 쳐주지도 말라고
차라리 애를 날 달라고 말했음.

우리집 사람들이 다 온순한편인데 화나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인거 오빠도 알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사과하고 잘못했다고
빌었으나 새언니가 더 난리가 나서는
정리가 안된 채 집으로 돌아갔음.

주말 지나고 월요일 나는 1억천만원을 오빠에게 송금함. (근데 일주일 뒤에 다시 내 통장으로 입금했더라..)

조카는 지난주에 졸업식을 했고 이제 입학 전까진 쭉 방학이라 나 지내는 곳에
내려와서 같이 지내고 있음.

설연휴 다음주에 마카오 가려고 예약함.
이런저런 생각이고 나발이고 실컷 놀고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약속함.

지금 나는 일도 일정도 다 미루고 아이랑
놀러만 다니고 있음. 당장 코앞에 닥친 마감도 미뤘음.

오빠 혼자 아이 보러 내려왔었는데 데리고 가려고 했다가 실패하고 혼자 돌아갔음.

아이는 고모인 나랑 살기를 원하고,

오빠입장 : 이제 조카가 본격적으로
공부해야하는 시기인데 친구 하나 없는
지방에서 새로운 환경을 왜 적응 해야하며
아빠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왜 고모랑 둘이 지방에서 사냐 말도 안된다는 입장이고

내입장 :
나는 아빠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왜 그동안 애를 이따위로 방치했으며 공부해야 하는
시기인거 알면서 이따위로 구냐고 팩폭함.
내가 애를 15년을 키웠고 난 애 보느라 친구 몇명외에는 애한테만 올인했으며 얘가 내 베프다.
내 베프가 눈칫밥 먹고 사는거 원하지 않으니까 데리고 있겠다 내가 데리고 있어도 너가 아빠가 아닌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지방에 있는게 싫은거면 여기 일 정리될 때까지만 지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겠다
근데 이거 하나만 알아둬라. 전에는 내 혈육인 오빠가 안쓰러운 마음이 커서 애를 키웠다면 지금은 내 베프인 조카때문에 내가 이러는 거라고 똑바로 알고 있으라고.

조카 입장 : 고모랑 살기 원하고
아빠 손길이 필요한 나이는 지났다.
아빠를 사랑하지만 아빠는 아빠 인생이 더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고모도 고모 인생이 있는데 미안하지만 고모한테 최대한 폐 끼치지 않으며 지내겠다.
혹시 고모가 결혼하고 싶거나 나랑 살기 싫다고 하면 그때 아빠가 받아주면 된다.
내 아빠니까.


라는 게 입장임.


친구들이나 내 주변인들은 조카도 다 컸는데 내가 나설필요없고 본인팔자이며,
스스로 해쳐 나가야 한다고 함.

내 걱정하느라 그러는 건 알겠지만 나도 아이랑 살기를 원하고 내가 아이랑 보낸 시간이 지 아빠랑 보낸시간보다 훨씬 더 많음.

부모님은 내 고집 못꺾을걸 알기 때문에
그냥 두시는 입장이시고
오빠와는 지금 계속 의견대립중임.
새언니는 아무 말 안하고 있음.

오빠는 17살이면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17살이 다 자랐다고 생각하지 않음.

인생에서 제일 유리같이 깨질 수 있고
그것에 마음이 다칠 수 있고
상처받을 수 있는 나이 아님?

내가 조금만 더 보듬어 데리고 있고 싶은데 다 컸다고 강요하는 오빠도 짜증나고
내가 고집을 피워봤자 오빠가 데리고 간다고 하면 애아빠니까 보내야 한다는게 화가남.


내가 고집을 피우는건지
진짜 애 다 컸으니까 그것도 네 팔자다 하고 애아빠한테 보내야 하는건지

이왕이면 최대한 아이 입장이 돼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조카또래의 청소년도 혹 보고계시면
댓글달아주시면 좋겠어요.



긴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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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여기가 제일 활성화된곳 같아서 여기에 올려요전 100일 좀 안되는 아들 키우고 있어요이맘때쯤 아이와 뭐 하면서 놀아줘야할까요??제가 아이를 늦게낳고 초산이라 체력이 많이 딸려요 ㅠ아이가 누워잇는걸 싫어해서 안아주고 동요불러주고 말계속 걸고 촉감인형 손에 쥐어줫는데 어색한지 안잡을려고하고..한번은 애기 뉘여놓고 쉬는데 엄청나게 울더라구요심심해서요...제가 사는곳이 해외라 시가 및 친정 식구들 도움을 못받아요 문화센터는 없고 키즈카페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못가고..뭐하고 놀아주셧나요 알려주세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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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추가하겠습니다.

옷가지고 지랄..이라는 단어쓴거 맞습니다.
선생님이 자주쓰는 단어라고 해요.

선생님이 학년부장인데 일이 많다고해요.

수업시작했는데도 선생님이 늦게오셔서
혼자 씩씩대면서는 학년부장맡으면
월급에서7만원인가 9만원을 더주는데
그거 안받고 안하고말지 짜증난다고
애들앞에서 화낸적이 있다고 얘기해서
제가그냥 선생님도 사람인데 힘드셔서
그랬나보다고 한적도 있고

아이가 저보고 딱갈이가 뭐냐고 묻길래
어디서 그런말들었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자기한테 한말이래요..

목소리가 큰 친구가있는데 말썽피우거나
하지는않고 웃음소리가 크대요.
그외에는 조용한아이고..
뭐 이건 애가한말이니깐 말썽피우는 애일수도 있겠죠..
근데 선생님이 넌 입좀 닫고 웃으라고
애들앞에서 면박주고,
아이가 그친구랑 친하게 지내는데
제아이는 키가 155정도고 그친구는 165라
키차이가좀 나는데 그걸비교하면서
딱갈이같다고했대요...
친구도 가려사귀라고 하면서 넌왜 그친구랑
왜 가깝게 지내냐고하고..
이부분은 이번에 알게됐는데
아이친구엄마가알면 엄청 속상해하실거같아요.

집에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계신데
그럼 너네엄마는 살림 전혀안하시냐고
이렇게 얘기했다는데. 6학년이면
말투나 뉘앙스 알지않나요?비꼬는 말투였다고 하길래 너가 잘못들었나보다 하고 말았어요.

젊은여자가 사람쓰는구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집에가서 부모님께 학교에서 있었던 쓸데없는 얘기 늘어놓지말라고도 했대요.

선생님은 30대남자선생님이고,
미혼이고요 저랑 동갑으로 알고있습니다.
(선생님이 8*년생이라고 애들한테 말함)

저도 학폭위원이나 도서관봉사등등 틈틈히합니다. 치맛바람쌘 엄마도 아니지만 학교에 아주 관심없지않아요.


아이에겐 갑작스런 일일거같아서 애아빠가
들어오면 이혼에대해 같이 설명하기로 했어요.

이제 곧 중학생이니..설명해도 되겠죠..
저도 용기가 없었나봅니다.

이번 건도 애아빠랑 상의했고,
제가 나서는것보다 남자인 아빠가 나서는게나을거같아서(여자라고 무시하는거같다고
애아빠가 그래서..) 설연휴때 한국 들어오면
이 문제에대해서 나서겠다고하네요.
어차피 방학이니까 갈때까지 기다리라고..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분노해주셔서도 감사드려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본문.

간단하게 쓰겠습니다.

이혼가정이고 아이둘 제가 키우는 엄마에요.

남편이랑은 이혼했지만 애들아빠로서는
역할 잘해주고 있어요.

양육비로 300씩 잊지않고 보내주고 있습니다.

전남편이 공부를 오래하고 자리잡은지 얼마안되서 집을 해주거나 하진않았고
제 친정에서 도와줘서 서울30평대 아파트에 살고있으며 저도 전문직입니다.

이혼했지만 친구처럼..까진아니여도
아이들이 있으니 잘지내려고 합니다.
전남편과 초등학교때부터 친구라
부부이기전에 베프였었구요..
암튼 하루한번은 아이들사진도 보내고
애들관련문제는 꼭 상의합니다.

해외에 있어서 아이들은 그냥 아빠가
외국에 있는줄알지 이혼한지는 몰라요.

이혼사유는 적지않을게요.

큰아이는 6학년입니다.

오늘 큰아이랑 얘기하다가 하는말이
선생님이 엄마혼자 너 키우시는데
말썽피우면 안되겠다 얼마나 힘드시겠니
아빠도 안계시는데 아들이 듬직해야지
아빠없이 애키우는게 보통이 아니야..


라고하셨다는데 아이가 눈치가 빨라요.

6학년이고, 아이 중학교배정때문에
서류낼때 이혼가정은 친권자 서류내느라
아이 기본증명서를 냈었거든요.

아마 선생님도 이것때문에 아시게됐을겁니다.

아이는 좀 혼란스러워하면서 얘기하길래
아빠랑 아까도 통화했잖아
그리고 지금 외국에 계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신거겠지 어떻게보면 엄마 혼자
널키우는게 맞긴하지. 이러면서 넘겼는데
아이가 예민한편이라 이혼얘기는
좀더있다 할생각이였거든요.

아이에게 선생님이 더한얘긴없냐고했는데
더이상은없다고는했는데 기분이 좀
그러네요.

평소에 아이 옷입은거보고(고가는 아니지만 백화점브랜드) 이런거 니나이때
아무의미없는데 돈지랄이라고(이렇게말했다고함) 말했던적도 있고,

저희 일하시는 아주머니 계신데
아이친구들이 그얘기를 했나봐요.
**네 집에 갔는데 일하시는 아줌마보고
**엄마인줄알고 인사했는데 아니더라
어쩐지 니네엄마 젊은줄알았는데 놀랬잖아
이런얘기하는걸 듣고는 너네엄마 살림
안하시냐고 물었다는데 아이가 비꼬는거처럼 들렸다고 기분이 별로였대요.

곧 졸업인데 그냥 넘어가야할까요?

동생도 이학교를 다니고있으니..
여러모로 신경쓰입니다.

학교선생님이 아이에게 부모이혼에대한
언급하는거, 괜찮은거에요?
제가 따로 선생님께 아이는 모르니 말씀하지 말아주세요 라고 했어야할까요?

당황스러워서 제대로 적은건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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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내용이 많이 길고 모바일로 쳐서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해부탁드리고, 개인적인 기준이 아니라 제 상황과 현실에 대한 댓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제 시궁창같은 인생이 나아질 수 없다 생각합니다.
노력하면 사람같이 살 수는 있겠지만, 평범한 가정..
아니 제가 생각하는 자식한테 부족하지않게 해줄 수 있으며
늙어버린 부모님을 부양하지만, 제 미래도 보장이 된 안정된 삶을 사는게 제 꿈입니다.
이게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 특정한 능력없이 노력만 하면 된다고 가능한 얘긴가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공부를 잘해도 뭔가 남보다 잘하는 능력이 있어도 그 길로 가는거 조차 많은 돈이 든다면
그 사람이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너가 노력해라 열심히 모아라 하면 된다 이렇게 쉽게 말하는데 그거는 '조금 가난한 사람이 노력하면 되는문제고' 저처럼 시궁창같은 인생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이 노력한다고 되는 문제인가요?

제 상황은 이렇습니다
저 포함 형제 자매가 5명이고, 부모님까지 총 7가족입니다. IMF때문에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망했고,
제가 정확히 초등학교 3학년일때에 아버지가 백수가 되셨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15년이 넘게 일을안하고 계십니다. 일을 하라고 좋게좋게 말씀 드리면 칼부림이 나려하고, 자기는 은퇴할때가 됐으니 너희들이 나를 먹여 살려야한다 이런 마인드를 갖고 계십니다. 이때가 저희 부모님께서 45~50세 정도 엿을 때 이십니다.
특정한 기술이 없는 부모님.
때문에 저희 어머니는 판매점같은 곳에서 100~130만원정도 받으며 저희 일곱 가족이 생활을 했고
남들 다 먹는 치킨을 1~3년에 한번 시키면 많이 시킨것이엿습니다. 이때 13000원짜리 치킨 한마리로 7명이 나눠먹고 그랫었고요ㅎㅎ

어머니 혼자 번 돈으로 일곱 가족이 생활 할 수가 없어서
버는것 보다 쓰는게 더 많아서 빚은 계속 늘어갔습니다.

저는 용돈 한번 받아 본적없이 살면서
돈시 필요해서 중학생2학년때 전단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고등학생때는 10~20만원 정도 받는 알바를 시작해서 핸드폰비를 제가 내고, 본인은 2~3만원만 쓰면서
나머지는 생활비로 쓰시라고 드렸습니다.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정말 말뿐이 아니라 옷 하나 사주신적이 없습니다.
속옷도 심지어 팬티까지도 사본적이 없습니다. 언니들이 입던걸 돌려입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제가 19살이 되고 선취업을 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가질 수 없던 물건들을 채워 나갔습니다. 옷부터 속옷까지, 스킨 로션같은 제게 필요한걸 전부 제돈으로 마련을 했습니다. 보험비,폰비,교통비 모두 제가 번돈으로, 부모님 보험도 하나 들어드려서 제가 냇습니다. 매달 집에 생활비로 20~30씩드렸습니다.
이러다보니 제게 남는 돈은 없었습니다.

21~22살이 되던 해에 큰 공장에 들어갔습니다
타지역이지만 돈이없어서 월세방을 못구했습니다.
사내 기숙사로 들어가서 한달에 5만원 주고 생활했습니다.
원룸보다 작은 방 하나에 2층침대 2개 있는곳
그 곳에서 모르는사람 3명과 총4명이 살아갔습니다.
주야교대근무엿고 매일 12시간씩 일했습니다.
한달에 1~2번밖에 못셨습니다. 또래 친구들 돈벌면서 부모님한테 용돈받는 친구, 폰비 보험비 부모님이 내주는 친구 대학 다니는 친구 1~2년 여행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태어나서 무언갈 받은 적이 없고, 받지만 않으면 다행인데
집을 간간히 도와줘야되는 상황이엿습니다.
그렇게 240~290씩 벌었지만 저는 지쳐갔습니다.
사람이 사는거 같지 않고, 정말로 퇴근하자마자 아무것도 못하고 쓰러져 자고 눈 뜨자마자 출근을 해야하는
일 잠 일 잠 밖에 못하는 생활이엿습니다. 그나마 쉬는 한달에 1~2번도 계속 누적되는 피로를 풀어야되서 자고 일어나면 출근 날이엿습니다. 대부분 남들은 나처럼 살지 않는데 나는 왜 이러고 살아야되는거지. 왜 일잠일잠만하는 기계적인 생활을 해야하지, 이게 사는게 맞는걸까
이렇게 살아가는게 맞는걸까 차라리 죽으면 편하고 행복꺼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사니깐 우울증이 걸리고,
'먹는거라도 행복하게 먹고싶었던거 아끼지말고 먹자
그렇게 해서 사람이 사는것처럼 느껴보자' 생각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려 타지로 내려와서 기숙사비,보험비,핸드폰비,부모님 보험비, 옷, 속옷, 생활비 모든걸 제가 번돈으로만 냇습니다 식비도 많이 커졌습니다. 매일같이 배달음식, 식당가서 다 먹지못해도 두개씩 시키곤 했습니다. 이래야 사는거같으니깐.. 우울하고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이렇게라도 안하면 왜사는지 내가 행복한 삶을 살고있는건지 안느껴졌으니까
그래도 버는 돈이 커서 100만원정도씩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12시간씩 근무를하면서 한번도 못앉고 계속 서서 일하다보니 잘걷지도못하고 5분도 서있을수없게 됐습니다. 참고 하려해도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거같고 발목이 아려왔습니다. 이때 제 발목에 복숭아뼈가 2개 있다는걸 알게되었습니다 부주상골 증후군이라고 불리더군요,
저 같은 사람은 서서 일을 할 수 없다 하네요 어쩔수없이 2개월정도 밖에 일을 못하고 집으로 내려와 쉬게 되었습니다. 집에 계속 누워만 있어도 발은 쉽사리 낫지 않았습니다. 2개월정도 쉬고 쉬면서 모은 돈 200만원을 다 썼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타지로 공장에서 일을 하기위해 내려갔습니다. 이번에는 17만원짜리 사외 기숙사생활을 하였습니다.
17만원짜리 원룸방에서 모르는 조선족 여자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 곳에서 세후 270~340정도 벌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랑 사는게 불편해졌습니다.
내가 이 정도로 힘들게 돈을 버는데, 혼자 사는 사치정도는 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는 돈이 많았지만 버는게 확실히 크다보니 어느정도 돈이 남았습니다. 그걸로 기숙사에서 나와서 보증금 300에 월세 45만원짜리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말이 45만원이고 공과금 관리비 등등 나가면 50만원이 넘게 나갔습니다. 모든 식생활비, 필수품 등을 사며 월세를 내려하니 돈이 잘 남지않았습니다.
고된 일을하며 밤낮을 바꿔가니 질염, 방광염이 계속 재발하였고, 병원에서는 약을 먹으면 나아야되는데 왜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뿐이엿습니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렇다고 생각하여 300만원을 주고
3달치 보약을 구매했습니다. 먹어도 소용 없었습니다
몸은 항상 아팟고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퇴사선언을 하였고 그렇게 쉬면서 쓰려고 모은 돈 400만원을 보이스피싱에 당해서 다 잃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 잘못입니다 무지했고 멍청했기에 당했습니다. 옛날같은 보이스피싱이 아니엿습니다.
조선족 말투 또한 아니엿습니다. 그렇게 발전한 보이스피싱에 속아 돈을 뺏기고 마음도 몸도 너무 지쳤습니다.
돈을 잃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몇달간 일을 더 해야됐습니다. 그렇게 드디어 쉬게 되었고 쉬다가 번 돈을 다 썼습니다.

많이 벌어도 오히려 병들면서 나가게되는 돈이 더 큰거같아
이번에는 10시간만 일하면서 주말에 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갔습니다. 전세대출이라는걸 알게되고 월세 탈출을했습니다. 전세대출이라해도 대출은 80%만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 제 돈 2천만원을 넣어야했습니다.
당연히 그런 큰 돈은 없었고 대출에 대출을 받아
갚아나가는중입니다.(물론 그렇게해도 월세보다 나가는 돈이 적어졌습니다)
조금 편해지니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 피어났습니다. 배운적도, 많이 그려본적 없었지만 어렷을때부터 소질이 있었습니다. 웹툰이나 이모티콘을 그려서 돈을 벌고싶었습니다. 소질은 있었으나 그 능력을 가꾸지 못했고, 학원을 다닐 형편도 시간도 안됐습니다.
학원비를 모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배운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일을 쉴동안 써야하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할
꺼 같았습니다. 퇴근하고 간간히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퇴근하면 놀고 싶고 쉬고싶어서 막상 그림을 그릴 생각을 엄두도 못했습니다.
남들 다 있는 특기.. 제게 있는 특기는 하필이면 그렇게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뽐낼 수 있는 특기엿습니다.

공장에서 버는 200만원 정도의 돈으로 아무리 많이 모은다 한들 제가 생각한 평화로운 삶은 불가능하리다 생각합니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전문직 아니면 안된다 생각합니다.
그나마 있는 그림그리는 재능은 시간과 돈이 없으면 시작을 못한다 생각합니다.

남들이 말합니다. 직장 다니면서 하면되지 너가 노력하면되지, 하지만 제게는 쉽지않습니다.
지금도 개처럼 일하면서 퇴근하면 쉬고싶고 놀고싶은데
일하다 겨우 퇴근하고 또 일을 하다가 잠들어야되는 생활 할 수 있는 과연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돈을 한달이라도 안벌면 생활이 안되는 사람이
노력하고 모으고 열심히 산다고 이 가난을 극복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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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 직장인 여자입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결혼은 커녕..
평생 연애도 못 할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모두 공무원이시고
성에 관해서 많이 보수적이세요.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에 키스신이 나오면
저런건 보면 안된다고 하셨고,
남자는 어려도 남자라며 초등학생 때도
남사친을 이해해주지 않으셨어요.

제가 중2 때 부모님의 발령으로
시골로 전학을 갔어요.
(당시 편의점도 없고, 롯데리아같은 체인점도 없던 시골마을)
시골마을이었기 때문에 오랫만에 온 전학생이었고,
도시에서 왔다고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제가 예쁘게 생긴 편이고,
상냥한 성격이어서 남자 애들한테 인기가 많았어요.

중3 2학기에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남자친구는 제가 전학간 날 짝이었는데
친하게 지내다가중3 때 같이 학생회를 하면서
같은 선도부 조원이 되면서 사귀게 됐어요.

부모님은 시골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지 않길 원하셨고, 저도 특목고에 가고 싶어서 
중3 겨울방학을 원래 살던 도시로 나와서
학원을 다니게 됐습니다.
부모님이 폰을 사주지 않으셔서
남자친구와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편지를 썼어요.
덜 쓴 편지를 책 속에 꽂아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어요.

그 다음날 아침 일찍 학원에 갔고 
저녁에 저희 집에서 친척들이 놀러와
함께 저녁을 먹었어요.
저녁 먹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안방으로 부르시더라구요.
안방에 들어간 순간 분위기가 싸해서
내가 뭘 잘못한게 있었나? 하고 걱정부터 했습니다.

부모님이 갑자기
"ㅇㅇ(남자친구)네 집이 어디냐?" 라고 물었고
전 눈 앞이 새하얘져서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니 남자친군데 왜 몰라!!"
라고 소리를 지르셨어요.
그러곤 제가 전날 썼던 편지를 꺼내고
처음부터 소리내서 읽으셨어요.
거실에는 친척들도 있었고,
그 상황이 너무 당황스럽고 공포스러웠어요.
편지 내용은 그냥 공부하느라 많이 힘들다,
방학인데 같이 놀고싶다.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부모님은 편지를 소리내서 다 읽으시고는
그 자리에서 편지를 찢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나가셨어요.
저는 찢어진 편지를 치우고
혹시 남자친구한테 찾아가는 건 아닐까,
학교에 전화하는건 아닐까 걱정했어요.
다행히 별 다른 일은 없었고, 특목고에 합격하면서
남자친구와 자연스레 헤어졌습니다.
별 일은 없었지만,
그 당시 상황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려서
남자를 사귄다는 건 잘못 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부모님의 감시가 더 심해졌어요.
타지역이어서 기숙사 생활을 해야했지만,
기숙사는 못 믿겠다며 마침 고등학교가 있던지역에 살고 있던 친척 집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트라우마로 인해 남친을 사귈 생각조차 없었지만
부모님은 아니었겠죠..

2~3달에 한번 정도 부모님이 친척집에 와서 만났었는데,학원을 다녀오니 또 난리가 나있었습니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다이어리가 가방에 있었는데
그걸 보셨어요.
친한 친구의 생일을 적어놓았는데
그 친구가 여자이지만 이름이 남자이름이에요.
그래서 남자라고 오해를 하셨던 건데
제 말은 듣지도 않고 다이어리를 찢어버리셨어요. 
나중에 여자애라고 사진도 보여드리고 해서 오해는 풀었는데 저에게 사과하시진 않으셨어요.
안그래도 트라우마가 있었는데
또 비슷한 일이 생기니까남자는
절대 사귀면 안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혀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연애 한 번 안해보고 살았어요.
친구들이 연애하면 좋아보이긴 하지만 부럽지도 않고 
그냥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고백을 많이 받았는데
다 거절을 하니 여자 선배들 사이에서 소문이 이상하게 났었습니다.
어장 관리를 하느니, 앞에서는 조신한척 뒤에서는 놀고다닌다느니..심하게는 사생활이 문란해서 오피를 뛴다느니.. 술집을 다닌다느니.. 이런 소문이 났었어요.

처음에는 해명하고 다니다가 지쳐서 신경안쓰고 
대학생활 하니 나중에는 그냥 엄청 눈 높은 애, 도도한 애로 여겨졌고선배들도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렇게 남들한테 트라우마가 있다고 말은 못하고
그냥 연애 생각이 없어~ 이렇게 다녔는데
지난 주말에 친척 오빠가 결혼을 했어요.

결혼식에 다녀오니 부모님이 그냥 농담식으로 
"너는 예쁘게 낳아줬는데 왜 연애도 못하고 그러고 있니?"이러더라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떠오른건
'나도 연애해도 되는거였어?' 였습니다.

갑자기 억울해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부모님한테 중 고등학교때 있었던 얘기를 꺼내면서 나 많이 힘들었다..그래서 난 연애도 못하고 고백도 늘 거절하고 살았다.. 다 말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기억을 못하시더라구요.
서로 그런일이 있었나? 기억나?
이러는데 너무 분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별 것 아닌 기억때문에
이 나이 먹도록 연애 한 번 못하고 살았나..
사실 그 기억때문에 연애를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내가 정신이 미성숙한가..
그게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게 뭐라고 연애를 못하냐고 할까봐
친구들한테 말 한번 꺼내보지도 못했었는데..

그 날 이후로 부모님이 별 일도 아니었는데
계속 연애하라고 그러시는데저는
이제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지도 않고..
무성욕자가 된 것 같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없는 일 같습니다.
나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나쁜 기억이..
분하고 억울해서 이렇게라도 얘기할 데가 필요해서.. 
계속 심란해서.. 글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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